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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V세대가 떳다.

Jake Yoon 2010. 3. 1. 09:22


[동아일보]

Valiant- 용감하게 불가능은 없다… 이상화, 동양인 약점 딛고 빙속 단거리 金

Various- 다양하게 내 꿈은 내가 정한다… 이승훈, 쇼트트랙서 스피드 전향 성공

Vivid- 발랄하게 1등 아니면 어때… 곽윤기, 시상대서 ‘시건방춤’ 은메달 자축


88서울올림픽 전후 출생… 풍요 속에서 사랑받고 자라

열등감-구김살-설움 없고 메달 따도 개인적 성취라 여겨


《“요즘 애들은 정말 다른 것 같은데….” 지난달 27일 오후 TV로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5000m 계주를 보던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이 은메달에 그친 아쉬움을 곱씹으면서 지켜본 시상식에서 의아한 장면이 연출됐다. 계주 주자였던 곽윤기 선수(21)가 시상대에 오르더니 씩 웃으며 요즘 유행하는 ‘시건방 춤’을 추며 자축했기 때문. 밴쿠버 올림픽을 통해 특성을 드러낸 신세대들은 용감하고(Valiant), 다양한(Various) 창의성과 생기발랄한(Vivid)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한 V세대들의 도전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 “도전은 어려울수록 즐겁다”

V세대들의 특징 중 하나는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도 용감하게 도전한다는 것. 동양인이 정복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모태범(21), 이상화 선수(21)처럼 말이다. 이들은 신체적인 약점을 피나는 연습으로 극복하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대학생 박성훈 씨(20·세종대 조리학과)도 지난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요리 부문에서 동양인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그간 서양요리 위주로 대회가 진행됐기 때문에 동양인이 금메달을 따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박 씨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중학교 때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요리 관련 자격증을 모두 따며 기량을 갈고닦았다.

대학생 황인범 씨(26)는 지난해 자전거 한 대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자전거로 총 1만8000km를 완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황 씨는 9개월간 매일 하루 60km씩 총 18개국을 돌아 완주했다. 황 씨는 “부모의 반대도 컸고 ‘취업 준비해야지 왜 거길 가냐’는 지적도 많았지만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도전 과제는 내가 정한다”

신세대들의 ‘용감한 도전’에는 전제가 있다. 도전과제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쇼트트랙에서 실패한 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1만 m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22)가 대표적인 사례다. 주변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렸지만 이 선수는 치밀한 준비로 도전에 성공했다. 창업 관련 일을 하고 싶어 전문계 고교인 선린인터넷고에 진학한 김지호 군(18)도 도전 과제를 직접 정한 케이스. 김 군은 “진학 당시 전문계고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주위의 반대가 컸지만 어른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V세대는 다양성을 중시한다. 이 때문에 획일화된 삶에 대한 환상이 없다. 다양한 성공이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또 꿈을 일찍 정하고 즐기다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박찬암 씨(21·인하대 컴퓨터공학과)는 2009년 코드게이트 해킹방어대회 등 각종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세계 최고 해커로 통한다. 박 씨는 “혼자서 해외 논문을 찾아가며 공부했다”며 “재미있게 하다 보니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 “발랄하고 쿨하게 나를 표현한다”

신세대의 특징은 블로그, 트위터, 유튜브 등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여자 쇼트트랙 대표 김민정 선수(25)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실격당한 뒤 즉각 자신의 미니홈피에 “너무 억울하다. 하늘이 우릴 돕지 않는다”며 심경을 직설적으로 털어놨다. 대학생 김유진 씨(23·고려대)도 지난해 자신의 몸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부산버디영화제에 출품했다. 김 씨는 통통한 몸매가 콤플렉스였지만 영상에서 처진 뱃살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김 씨는 “덕분에 다이어트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며 웃었다.

하지만 V세대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불문율이 있다’고 말한다. 최대한 ‘쿨’해 보여야 한다는 것. 지난달 26일 김연아 선수(20)는 금메달을 받는 순간 최대한 우는 모습을 자제했다. 김 선수는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 시상대에서 우는 자신의 모습을 TV로 본 뒤 “너무 추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V세대들의 특징은 △경제적 풍요 △한두 자녀 가구 △글로벌화 △인터넷 문화 등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김정운 명지대 여가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신세대는 88 서울 올림픽 전후에 태어나 고속성장의 혜택을 받은 세대”라며 “풍요 속에서 글로벌한 가치에 익숙하다 보니 열등감이 없고 주눅 들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또 물질적 풍요 속에서 1자녀 가구 부모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투자를 받다 보니 설움도 구김살도 없다는 것.

이 때문에 V세대들은 메달을 따도 ‘고생을 극복했다’, ‘국가에 기여했다’는 생각보다 ‘개인적 성취를 이뤘다’고 느낀다. 신세대 국가대표 선수들이 애국가를 들을 때 북받쳐 울지 않고 미소를 띠는 이유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박혜림 기자 inourtime@donga.com

■ 기성세대가 본 V세대 “책임감 잃지 말기를”

V세대가 본 기성세대 “인내심 배우고 싶어”


사회학자들은 어느 시대건 ‘신세대 담론’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통기타 세대, 80년대 386세대, 90년대 X세대, 2000년 N세대(혹은 월드컵 세대)가 본 요즘 신세대는 어떨까.

초등학교 교사 이모 씨(61)는 “요즘 신세대는 매우 자유롭고 부담감을 갖지 않는 세대”라며 “외국 선수들에게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하지만 너무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메달에 도전하기보다는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명감도 잃지 말아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1980년대 학번인 김종욱 씨(49·자영업)는 “춤이든 오락이든 자유롭게 즐기며 그 자유로움이 우리가 보기에는 용감하고 씩씩해 보인다”며 “하지만 자유로운 모습이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해 보이는 것은 단점”이라고 말했다. 386세대는 요즘 신세대에 대해 “우리처럼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치열함도 권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 다양한 것을 얇게 접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X세대인 회사원 문모 씨(32)는 “‘자유’라는 측면에서 X세대 이후 다 비슷하지만, 현재 20대는 자유를 더 누리면서도 인간관계라는 측면에서 조금은 외로운 세대”라며 “인터넷 문화 탓에 관계를 맺고 유지해나가는 것이 너무 일회적”이라고 말했다. 박영민 씨(28·대학원생)는 “같은 20대이지만 20대 후반과 20대 초반은 차이가 있다”며 “20대 후반 세대까지만 해도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지만 20대 초반은 문제의 원인을 자기 내부에서 찾는다”고 밝혔다. 그 원인에 대해 “외환위기를 직접 겪은 20대 후반은 자신의 운명이 운에 좌우된다고 생각하지만 20대 초반은 자신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V세대는 ‘인내심’과 ‘희생’이 기성세대의 키워드라고 밝혔다. 대학생 장경우 씨(20)는 “아버지를 보면 힘든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고 스트레스 많이 받을 텐데 잘 참으신다. 그 인내심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세원 씨(22·여)는 “기성세대는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 희생한다. 어른들에게 늘 그 점이 고맙다”며 “하지만 가족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안정적인 것을 계속 추구하는 것 같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고 돈이 안 되는 일도 하고 싶은데 어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V세대 메달리스트 말말말

모태범 “상화랑 사귄다고요? 상화가 들으면 싫어해요”

김연아 “연예인 시상 소감 같지만 모두모두 감사드려”


▽이정수=“오노의 몸싸움이 심했다. 시상대에 올라와서는 안 될 선수다.”(2월 14일,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우승한 뒤 은메달을 딴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를 비난하며)

▽모태범=“태릉에서 미디어데이할 때에 나한텐 누구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웃음). 그래서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언론에서 무관심했던 게 오히려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2월 16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이상화=“서러운 점도 있었다. 얼마 전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에서 종합 1위를 했는데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니 묻혀버리더라. 하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서 정말 기쁘다.”(2월 17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우승한 소감을 밝히면서)

▽모태범=“만약에 금 은 동메달을 모두 따면 그때는 진짜 울 거다. 무릎까지 꿇고 울 거다.”(2월 18일, 메달을 따고도 울지 않는 이유를 말하며)

▽모태범=“상화가 아깝죠. 그런 얘기 들으면 상화가 진짜 싫어해요”(2월 18일, 동갑내기 이상화와 사귄다는 소문이 있다는 질문에)

▽이승훈=“모태범과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서 내가 살짝 묻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게 자극제가 됐다. 서울 가면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 사인 공세가 몰려오면 즐거울 것 같다.”(2월 24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 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인터뷰에서)

▽성시백=“후배는 물론이고 선배들도 많이 위로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내가 참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2월 25일, 거듭된 불운 속에서 노 메달에 그치고 있지만 즐겁게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며)

▽김연아=“연예인의 시상식 소감 같은데 모두모두 감사드린다.”(2월 26일, 피겨 여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뒤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며)

▽곽윤기=“운동을 잘해서 관심을 받는 것이 중요한데 특별한 이벤트로도 관심을 받고 싶었다. 현아(가수 포미닛의 멤버)의 춤을 하려고 했는데 시상식 전에 연습했더니 너무 어려워 시건방춤을 하게 됐다.”(2월 28일,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딴 뒤 시상식에서 시건방춤을 춰 화제가 된 데 대해)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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